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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미역국 정찬

해운대

풍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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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주인공은 갖은 고난을 헤치고 일어서거나, 혹은 범생 같고 평범하던 캐릭터의 포스가 점차 깨어나야 스토리가 맛깔지게 된다. 주인공이 임팩트가 없으면 그 작품은 실패고, 사람들을 홀딱 반하게 만들면 그 작품은 성공이다. 풍원장의 미역국은 후자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소한 일년에 한번은 먹을 법한 음식이 바로 미역국이다. 생일날 먹는 중요한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미역국 하면 평소엔 약간 푸대접을 받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도 바로 미역국이다.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아래에 해당 포스팅의 링크를 다시 올려두었다. 


2018/06/04 - [K-PAX STORY] -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이유?



역국 푸대접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미역국이 평소 큰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아무래도 미역이 우리에게 너무나 흔하디흔한 식재료라는 점이 아닐까 한다. 너무 비싸게 굴어도 제 대접을 받기 힘들지만 반대로 남아돌거나 너무 흔하면 뭐든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둘째는 미역국에는 아무리 많이 들어간다고 해봤자 두 가지, 즉 쇠고기 혹은 북어 혹은 조갯살 중에 하나가 미역 보조로 들어가는게 전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귀차니즘 때문에 그나마 이마저도 넣지 않고 끓이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이렇다 보니 미역국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미역이 미끄럽다는 이유로 시험 낙방의 책임을 죄 없는 미역국에게 뒤집어 씌운다거나, 또는 애정이 식은 애인이나 반려자 대하듯 연약하기 그지 없고 보들보들 사랑스런 미역을 막 대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렇다보니 미역국 파는 식당도 새우깡 속 새우처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든게 아닐까?






느 날 여행 중  부산 #해운대 #한화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묵고 해운대에서 아침을 맞았다. 전날 술을 과음하거나 무리한 일정을 달리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행이셨던 분이나 나나 쭝궈(중국)에서 오래 생활해 주로 부드럽고 가벼운 음식으로 아침을 해결하는 중국식 식생활에 익숙한 터라 목구멍을 훌훌 넘어갈 수 있는 아침거리를 찾아 나섰다. 해변 쪽을 뒤지던 중 아마 당시로는 유일하게 아침 손님을 받고 있는 곳으로 보이는 풍원장이라는 식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미역국정찬 전문인 것을 확인하고 '가벼운 미역국', '흔한 미역국'으로 가벼운 아침을 먹어야지 하는 미역국을 대하는 네(4)가지 없는 마음을 안고.



해운대 풍원장 메뉴

미역국 가격이 만원이 넘는 걸 보고는 거의 이종격투기급의 격한 말이 튀어나올뻔 했다. 내가 5성급은 아니라도 4성급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할뻔했다. 각고의 수련을 통해 겨우겨우 지성인에 접근해가고 있는 레벨업 단계에 있었던 때인지라 그나마 튀어나오는 불만을 속으로만 분출할 수 있었다. '무슨 미역국 주제에... 궁시렁 궁시렁'. 속으로 만이었지만 상당히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비난을 퍼부었는데 해운대까지 싸잡아 내몰았다. '해운대라서 비싼 거임? 영화에도 나오고 바캉스 명소라서?'


영화 해운대와 태풍 차바 당시 해운대 사진(출처: 네이버와 연합뉴스)


쓸데없는 소재를 가져와서 본질을 흐리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다시 미역국으로 돌아가자.


분노 조절이 안되었던지 메뉴판 오른쪽에 맛있게 먹는 법이라던가 저염식 이야기라든가 하는 것들이 당시에는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다. 후에 메뉴판을 찍어둔 사진을 보고서야 "저런 내용도 있었네?"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면서도 메뉴판이니 음식이니 찍을 사진은 다 찍어두었다. 아마도 '미역국 주제에... 이 경악스러움의 증거로 남겨두겠어' 하는 마음으로 찍었던 듯하다. 









풍원장 미역국정찬

'흥!' 하면서 한껏 목이 뒤로 젖혀지고 천장을 보며 배 째란 식의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기다리는데 반찬이 차려졌다. 반찬이 다 올라오자 몸은 멈췄는데 안구가 굴러 눈동자가 슬슬 반찬 쪽을 곁눈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반찬을 하나하나 훑어보고는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눈동자. 
미역국 상에 올라올 것으론 예상하지 못했던, 생일날에도 쉽게 접해보지 못한 것으로 기억이 되는, 본인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돌잔치 때에나 받아 봤을 법한 것들, 아니 그 이상의 것들이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시 #해운대 #풍원장 미역국정찬의 기본찬은 반찬이라고 하기에는 섭섭한 돼지김치찜, 가자미튀김, 잡채 등의 요리와 삼색나물, 그외 6가지 반찬이 올라왔다. 여기까지만 해도 "만원 받을만 했네."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가자미 튀김

돼지김치찜도 훌륭했지만 기본찬 중에 매력 포인트는 역시 이 가자미 튀김이었다. 싱싱한 가자미를 튀긴 다음 간장 소스를 뿌리고 새싹채소로 마무리 했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튀김의 맛을 신선한 새싹채소가 잡아 준다. 그리고 바닷가 도시인지라 생선살이 남다르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가시 발라 먹는 것이 조금 귀찮긴 했다. 이 놈의 귀차니즘... ...










풍원장 미역국

인상이 강렬한 영화의 주인공은 늘 사람들의 애간장을 살살 녹인 다음 등장한다. 처음부터 설레발 떠는 캐릭터 치고 매력이 오래 가는 캐릭터는 드물다. 모름지기 주인공은 갖은 고난을 헤치고 일어서거나, 혹은 범생 같고 평범하던 캐릭터의 포스가 점차 야수처럼 깨어나야 스토리가 맛깔지게 된다. 주인공이 임팩트가 없으면 그 작품은 실패고, 사람들을 홀딱 반하게 만들면 그 작품은 성공이다.(요즘 외교/정치 얘긴 아니다) 풍원장의 미역국은 후자였다. 나는 소고기 미역국정찬을 시켰는데 미역이 주재료인지 소고기가 주재료인지 도대체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조화롭게 어울린 재료가 진한 국물 속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이 진한 미역국의 풍미. 흔한 미역국이였지만 더이상 흔한 맛이 아닌 그 진한 국물. 한순간에 김치찜과 가자미튀김이 조연으로 전락해버리는 순간이었다. 

뜻하지 않게 아침부터 호강을 해버렸구나!

거만하게 젖혀졌던 고개는 어느 순간 90도로 꺽여 황홀한 미역국 앞에 고개를 숙이고 감동의 침을 흘리게 된다. 그 동안 무시했던 미역국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아주 간혹 조개 미역국에서 뭔가가 바싹하고 씹히는 경우가 있다. 풍원장에서 조금더 신경 써주길... 




풍원장 영업시간
매일 08:00 ~ 24:00









by Torus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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