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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태그의 글 목록 :: Torus Lab by k-p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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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내 최고교육기관의 역활을 했던 곳이다. 요즘에 빗대자면 국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려시대에 처음에는 국자감으로 출발하여 고려 충렬왕때 성균감, 그리고 충선왕때 성균관으로 불리게 된다. 그다음에도 몇번 명칭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결국은 다시 성균관으로 바뀌어 조선시대까지 쭉 이어졌다고 한다. 태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하는데 '태학'은 바로 고구려 때 나라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곳이다. 신라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국학을 들 수 있다. 아무튼 조선 시대 때 한양과 개성에 각각 한 곳씩 두곳의 성균관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홀라당 타버리는 비극도 겪었지만 후에 다시 중건되었다. 일제때 폐교까지 되기도 했으나 광복 1년후 성균관 대학으로 명맥이 이어지게 되었다.









소위 최고의 대학.

쓱~ 들어가 본다.

최고의 대학에 꼭 입학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냥 들어가서 구경해보면 다녀온 것이 되지. ㅎㅎㅎ

이로서 최고의 교육기관을 들어간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을 유생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개국초에는 유생수가 150명이었다가 세종때에는 200명으로 증원했다고.

당시 조선의 인구가 많지는 않았겠지만(세종11년때인데 정확한 인구는 모르고 600만이 좀 넘지 않았나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연구결과 추정치이다) 그래도 달랑 200명이라니... 컷트라인 참 빡세었을듯 하다.

그런데 입학 자격이 양반사대부 자제들로 국한되어 있었고 그중에서도 몇가지 조건을 갖추었어야 한다고 전하니 이건뭐 일반인에게는 있으나마나...















기숙형 교육기관이었는데 유생들은 동재와 서재에 나누어 기숙하면서 아침 저녁 식사를 할때 출석부에 서명을 했고 그 출석기록은 점수로 반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도 개근상이란걸 받아본 경험들이 있겠지만 그때도 개근이란 참 중요했나보다.

근데 그때는 더 엄격했던 것이 300일 이상 기숙하면서 300점 만점을 취득(개근)해야지만 관시(문과 첫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줬다고 한다. 결석하면 대략 난감.

알아보니 그 외에 뭐 여러가지 설명이 있는데 내가 난독증인지 아니면 내용이 어려운건지 이해불가하므로 생략.






성균관 이름의 뜻

성균관은 주례의 대사악에 나오는 용어인 '성균'에서 따왔다고 한다. '성균'이란 음악을 조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음악을 조율하는 것과 같이 어그러진 것을 바로 잡고, 지나치고 모자라는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출처: 위키백과)





성균관의 학령(學令)

최고 국립교육기관답게 엄한 학령(학칙)이 있었는데 몇가지 살펴보면,

조정을 비방하는 자(정부를 욕하는 자쯤 되겠다. 쉽게 말해 전주 이씨 조선을 욕하지 말라는 뜻? 하지만 실제로는 조정의 처사에 불만이 있으면 시위, 단체행동, 수업거부 땡땡이 등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사장을 모독하는 자(선생님한테 까불지마라), 주색을 말하는 자는 벌한다.

절개를 굽힌자(군화 바꿔신기 금지), 교만한 자, 스스로 자랑하는 자(꼴불견 금지), 사치한 자(아이폰 금지), 교모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민 얼굴빛으로 남의 환심을 사려는 자(정치...) 등은 재에서 쫓아낸다(퇴학이란 뜻?)

매월 8일, 23일은 정기휴일로 세탁하거나 부모를 찾아뵈옵는 여가를 준다.(단 이틀이라니... ㅠ.ㅠ)
















강당인 성균관 명륜당.강당인 성균관 명륜당.

명륜당이란 '윤리는 밝히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말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총 18칸으로 좌우에 협실이 있고 가운데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저 현판은 1606년(선조 39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쓴 것이라고 한다.

근데 왜 명의 사신이 쓴거임? 이유를 아시는 분?







2017년도 봄엔가 찍어둔 사진이다보니 개나리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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